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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 History of Grand Master Lee

English Translation

이병인 총재님 가문

이병인(李丙仁) 세계무술원 총재님은 이씨조선(李氏朝鮮)을 519년(1392-1910)간 다스린 전주리씨(全州李氏) 왕족가문 출신으로, 왕씨고리(王氏高麗)를 이어 이씨조선(李氏朝鮮)을 창업한 태조대왕 이성계(太祖大王 李成桂)의 다섯째 아들이며 이씨조선의 세번째 임금인 태종대왕 이방원(太宗大王 李芳遠)의 첫째아들 양령대군(讓寧大君)의 18대이고, 양령대군(讓寧大君)은 처음 전주에 정착하고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 739-761)때 사공(司空) 벼슬을 지낸 시조 이한(李翰)의 24대이다. 시조 사공(司空) 이한(李翰)은 본래 신라 6촌의 가장 우두머리로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를 키우고 BC 57년 최초로 화백회의(和白會議)를 도입하여 신라(新羅 BC 57-AD 935)의 초대왕으로 세운 공로로 아찬(阿餐) 벼슬에 오른 이알평(李謁平)을 시조로하는 경주리씨(慶州李氏)의 36대이다. 따라서 이병인 총재님은 전주리씨 시조 사공(司空) 이한(李翰)부터는 42대요, 경주리씨 시조 아찬(阿餐) 이알평(李謁平)부터는 78대가 된다.

전주리씨 시조 이한(李翰 ?-754)은 어려서부터 남들보다 뛰어나 15세에 한림원(翰林院)에 들어갔고, 18세에 사공(司空)에 올라 공평하고 슬기롭게 국정을 다스리니, 고리 (高麗 또는高句麗 277 BC­668 AD), 백제 (百濟 18 BC­660 AD), 신라 (新羅 57 BC­935 AD), 가야 (伽倻 혹은 加耶, 伽耶 42 AD­562 AD) 넷 왕국을 병합한 뒤에 생겼던 불화가 가시고 온나라가 다시 화평하였다. 후에 태종무열왕 김춘추(太宗武烈王 金春秋)의 10세손 김은의(金殷義)의 딸과 혼인하였다. 시조 사공 이한(李翰)이 전주에 터를 잡은 이후 대대로 전주에서 살며 많은 학자, 고위관료, 및 무인을 배출하였다. 특히17대 대장군 이양무(李陽茂)는 신라의 최고사령관이 되었다.

그러다 무예와 궁술의 달인이었던 18대 목조 이안사(穆祖 李安社 ?-1274) 때 이르러 삼척으로 옮겨 몽골군의 침략을 막고 해안을 노략질하던 왜구(倭寇)를 섬멸하였다. 뒤에 다시 의주로 옮겨 의주병마사가 되어 몽골의 침략을 막았으나, 그 지역이 몽골의 지배아래 들어가자 1255년 원래 고리(高麗)와 신라(新羅)에서 갈라져 나간 여진족들이 살던 지역인 알동(斡洞)으로 옮겨 천호(千戶)가 되었고 19대 익조 이행리(翼祖 李行里), 20대 도조 이춘(度祖 李椿)까지 대대로 몽골의 다루가치(darughachi)를 지냈다. 그러다 21대 환조 이자춘(桓祖 李子春 1315-1361)은 1356년 고려 공민왕의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 공격을 도와 동북면에서 몽골 세력을 몰아내고 만주를 수복하는 큰 공을 세우고 삭방도만호겸병마사(朔方道萬戶兼兵馬使)가 되어 화령부(和寧府 지금의 영흥)에서 살았다.

이자춘의 아들 22대 태조 이성계(李成桂 1335-1408)는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였고 말타기, 궁술(弓術), 군사작전에 몹시 뛰어났는데, 특히 궁술에 뛰어나 신궁(神弓)이라고 불렸다. 아버지 이자춘이 돌아가시자 이성계는 아버지를 이어 동북면병마사가 되었고 그의 뛰어난 무예와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바탕으로 30여년 동안 수많은 전쟁에서 한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1361년 홍건적(紅巾賊)에게 함락된 수도를 탈환하였으며, 1362년 나하추(納哈出)가 이끌던 수만명의 몽골군을 무찔렀고, 빈번하던 여진족의 침입을 모두 물리치고 동북지방에 평화를 가져왔으며, 1377년과 1380년에는 경상도와 전라도에 창궐하던 왜구를 소탕하였다. 그러한 공로로 나중에 우군통도사가 되었다. 1392년 왕씨고리를 이어 이씨조선(李氏朝鮮)을 세우시고 초대 임금이 되어 7년동안 (1392-1398) 다스리시다 자신의 둘째아들이며 또한 신궁(神弓)이라고 불렸던 정종대왕 이방과(李芳果)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물러났다.

나중에 태조 이성계의 아들중 가장 똑똑하고 무예가 출중하여 신검(神劍)이라 불렸던 다섯째 아들 태종대왕 이방원(李芳遠 1367-1422)은 1400년 왕자의 난을 계기로 자신의 형에게서 왕권을 물려받아 조선의 셋째임금에 올라 19년동안(1400-1418) 다스려, 이씨조선(李氏朝鮮)이 1910년 일본에 병합될 때까지 500년 이상을 지탱할 수 있는 확고한 기틀을 다졌다. 1382년 원경왕후(元敬王后 1365-1420) 여흥민씨(驪興閔氏)와 혼인하여 슬하에 양령대군 이제(讓寧大君 李? 1394-1462), 효령대군 이보(孝寧大君 李補 1396-1486), 충령대군 이도 (忠寧大君 李?1397-1450 세종대왕), 성령대군 이종(誠寧大君 李種 1405-1418) 네 아들과 네 딸을 두었다.

양령대군(讓寧大君)은 이씨조선(李氏朝鮮)의 세번째 임금이신 태종 이방원(1367-1422)의 첫째아들로 태어나 1404년 9살의 나이에 세자로 책봉되어 왕권을 물려받도록 되어 있었으나, 동생 충령대군의 자질과 능력을 알아차리고, 왕권에 뜻을 버리고 미친척하면서 일부러 많은 말썽을 일으켰다. 그러던 1418년 6월 어느날 밤 양령대군이 효령대군에게 찾아가 세자자리를 충령대군에게 넘기자고 하였다. 이에 효령대군이 흔쾌히 받아들이고 둘은 다음날 몰래 궁궐을 나가 3일 동안 돌아오지 않았음으로서 세자책봉을 결정짓는 마지막 자리에 나가지 않았다. 효령대군의 불참으로 결국 충령대군(忠寧大君)이 세자에 책봉되었고, 충령대군은 이씨조선(李氏朝鮮)에서 가장 훌륭한 왕인 세종대왕이 되어 33년간을 통치하셨고 (1418-1450) 1443년에는 홀로 훈민정음을 만드셨다. 넷째인 성령대군(誠寧大君)은 14세에 홍역을 앓아 일찍 세상을 떠났다. 이러한 이유로 남은 세 명의 대군들간에는 끝까지 우애가 돈독하였다.

양령대군(讓寧大君)은 특히 탄궁(彈弓)과 서예에 능해 숭례문(崇禮門)과 경회루(慶會樓)의 현판을 썼다. 또한 타고난 무예와 말타기로 사냥을 즐겼는데, 사냥이 끝나면 잡은 짐승을 효령대군(孝寧大君)이 지내는 절앞에다 갔다놓곤 했었는데, 불교신자인 효령대군(孝寧大君)이 “살생을 그리 즐겨하면 지옥이 두렵지 않느냐”고 묻자, 양녕대군이 대답하길 "살아서는 임금(충령대군)의 형이요, 죽어서는 보살(효령대군)의 형인데 지옥이 무섭겠는가" 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李承晩) 박사가 양령대군(讓寧大君)의 16대다. 이병인 총재님의 뛰어나고 타고난 무예는 전주리씨 가문에 대대로 이어진 무예의 전통을 이어받음이다.

효령대군 20대 이정철(李廷喆) 박사 씀


전주리씨 시조 사공 이한의 묘가 있는 전주 조경단(肇慶壇)


태조대왕 이성계의 어진과 그의 묘 건원릉(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62 동구릉 소재)


태종대왕 이방원의 어진과 그의 묘 헌릉(獻陵) (서울시 서초구 헌인릉길42 소재)


양령대군 이제의 묘(왼쪽)가 있는 지덕사(오른쪽) (서울 동작구 노량진2동 310-99 지덕사 소재)


양령대군의 첫째아우 효령대군의 영정과 청권사에 있는 그의 묘 (서울 서초구 방배동 190-1 청권사 소재)


양령대군의 둘째아우 충령대군 이도 세종대왕의 어진과 그의 묘 영릉 (경기도 여주구 능서면 왕대리 산83)


양령대군의 셋째아우 성령대군의 묘와 그의 기념관 대자사 (경기도 고양시 대자동 산69-1)

Syngman Lee(1875-1965), a 16th generation descendant of Grand Prince Yangryung and the first, second, and third President of Republic of Korea, who earned his B.S. from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his M.A. from Harvard University, and his Ph.D. from Princeton University.


A hunting mural on the wall in Mooyongchong, one of the tombs of the Kingdom of Corea, which is currently located in the northeast part of China


A painting titled “Archery” of Hong Do Kim (1745-?) of Lee Corea


A traditional Korean bow Kakgoong (left) and the bow of Emperor Kojong, the 26th King of Lee Corea


Sainkum, the royal sword specially made only in a “tiger” day of a “tiger” month in a “tiger” year for the royal family members during Lee Corea


Practice of traditional Korean martial arts passed down through the Junjoo Lee royal family